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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ume 05 | 존재의 독창성 '모퉁이 옷장'

by thebom posted Sep 0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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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色)은 존재의 독창성을 표현하기에 가장 유능한 도구라 생각한다. 비단 사람의 일만은 아닐 것. 건물 외벽을 두른 쨍한 청록과 와인색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 모습이 꼭 사랑스러운 색감에 취하는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 나올 것만 같다. 어떻게 보면 지구에 불시착한 우주선 같기도 하다. 



모퉁이옷장4-v3.jpg



아주 좁고도 긴 
모퉁이 옷장을 처음 보고선 (세상에서 가장 슬림한 집으로 유명한) 폴란드 바르샤바의 케렛 하우스(Keret House)가 단번에 떠올랐다. 모퉁이 옷장은 정말로 길모퉁이에 있었다. 가게는 아주 좁고도 긴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흡사 옷장의 모습이었다. 외부만큼이나 내부 역시 독특한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역시 외국 동화에나 나올 법한 다락 형태의 복층 구조였다. (한쪽 끝이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로 되어 있는)캔틸레버 형식의 계단과 화장실을 개조한 탈의실, 흔히 보기 힘든 각종 빈티지 의류와 소품들 또한 시간을 들여 살펴보게 된다. 


모퉁이옷장1-v2.jpg

인도로부터
모퉁이 옷장 있기 전에는 폐가 수준의 빈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1, 2층으로 분리되어 있던 건물을 복층 구조로 바꾸고 페인팅을 포함한 인테리어 등 모두 주인장 부부와 지인들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모두 ‘재밌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마음 하나에서 시작된 것. 
모퉁이 옷장을 찾아오는 손님 사이에서 가장 빈번히 언급되는 건 단연 외벽의 색감이다. 흔히 보기 어려운 쨍한 청록과 와인색은 어김없이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사실 색을 고르기에 앞서 많은 다른 후보가 있었지만, 청록과 와인으로 마음을 정한 것은 주인장이 다녀온 인도 여행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바로 주인장이 머물렀던 리조트로부터 영감을 얻는 것. 리조트 내부의 벽지가 청록색이었고, 방안에는 와인색 띠가 그려진 나무침대가 있었는데, 그것이 고스란히 모퉁이 옷장에 입혀지게 된 것이다. 


제주는 생각보다 춥다
아는 사람은 안다. 제주는 생각보다 춥다. 실제 온도는 육지보다 웃돌지만, 강한 바람 때문에 체감 온도는 더 낮게 느껴지는 것. 
“사실 제주에 순전히 옷을 사러 오는 관광객은 없잖아요(웃음). 저희 가게도 대부분 구경이나 사진을 목적으로 오시지만, (예상했던 것보다)추운 날씨에 급하게 옷을 사러 오시는 분들도 제법 있어요. 저희끼리는 우스갯소리로 지금이 딱 봄과 여름 사이인데, 지금 긴소매를 사면 관광객이고 반소매를 사면 제주도민이라고 해요(웃음).” 



모퉁이옷장3-v2.jpg


옷가게라기보다는
이상한 일이다. 모퉁이 옷장에선 여느 구제 옷가게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부산, 태국, 일본 등지에서 발품 팔아 들여진 옷들은 느슨해진 단추를 손보는 일부터 세탁과 건조 다림질까지 모두 수작업을 거쳐 옷걸이에 걸리게 된다. 유별나게 공들인 모든 과정을 거치다 보면 특유의 냄새 또한 사라지게 되는 것. 
아무리 빈티지 의류라고는 하지만 판매되기 위해선 이런 수고가 필요하기에, 대부분의 빈티지 숍에서 판매되는 옷들은 새 옷과 비슷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오히려 그 희귀성 때문에 훨씬 비싼 가격에 팔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장 부부가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건, 사람들이 좀 더 쉽게 빈티지 의류를 접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솔직히 젊은 학생 분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시는데, 전부 코 묻은 돈이고, 아껴 써야 하는 용돈이잖아요. 저희도 그럴 누구보다 잘 알아서 높은 가격을 붙이기가 좀 그렇더라고요. 뭐 손익분기점만 넘기자, 이런 마음(웃음). 그냥 많이들 좋아해주시면 저흰 그것으로도 좋아요. 사실 저희 가게가 옷가게라기보다는 평소에 입지 않던 스타일의 옷을 입고 사진도 찍고 놀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되었으면 해요. 아직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퉁이 옷장은 어떤 곳이라 정확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옷만 파는 곳은 아닐 거예요. 찾아와주시는 손님들도 꼭 옷을 사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와 주셨으면 좋겠어요. 옷가게에 들어가면 점원이 졸졸 따라다니는 거, 진짜 끔찍하잖아요(웃음).” 


나누장 마켓
조만간 모퉁이 옷장에선 이름하여 ‘나누장’ 마켓이 열릴 예정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지인들로부터 더 이상 입지 않는 옷을 받아 착한 가격에 판매를 하고, 그 수입금을 기부한다는 취지다. 빈티지 의류가 가지는 의미가 그런 것이다. 나에게는 질린 옷이 누군가에게는 기분 좋은 하루를 만들 새 옷이 된다는 것. 타인을 기쁘게 하는 일엔 대부분 거창한 노력을 요하지 않을 때가 많다. 

 

 

the bom volume 05 <Classic Summer> '존재의 독창성, 모퉁이 옷장' 중에서

 라어진 / 사진 김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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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ing / Summer 2016

Volume 05 | Classic Summer

★20160518_thebom_vol5_최종_JPG_200px.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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